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 게바라 (문단 편집) ==== 반대파 학살과 정치범 수용소 ==== 체 게바라가 혁명 직후 반대파 숙청과 처형을 지휘했으며, 또한 쿠바와 볼리비아, 콩고에서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기도 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라 카바나 노동수용소의 경우. 그는 카스트로의 지시로 쿠바의 라 카바나에 공직자들의 태업을 처벌하기 위한 노동 수용소를 세우고 소장으로 재직하였다. 라 카바나 수용소는 알려지기로는 자진해서 공직자에서 물러날 경우 형이 면제되는 방식이었고, 실제로 공직자 교화용으로 운영한 상세한 자료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보니 실제로는 [[정치범 수용소]]의 형태로 운용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상식적으로 공직을 포기하는 것과 수용소에 갇혀 죽을지도 모르는 강제노동을 하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를 선택할 것이니까. 아니면 선택권이 자유롭지 않았다거나.[* 라 카바냐 수용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헬렌 야페가 쓴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을 참고할 것.] 실제로, 피델이나 체 게바라, 쿠바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상당수는 [[미국]]의 [[마이애미]]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감안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바티스타]] 정권 경찰 출신으로 피델 카스트로 치하에서 반체제활동을 벌이다 테러 혐의로 체포된 아르만도 비야다레스는 옥중에서 이루어진 고문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고 주장하여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국제 캠페인으로까지 번졌던 적이 있다. 그러나 쿠바에서 석방 조건으로 '[[종점의 기적|걸어서 비행기를 타고 걸어서 비행기에서 내릴 것]]'을 주문하자 하체 마비환자 행세를 즉각 집어치웠고, 이를 반쿠바 선전에 활용하려던 미국은 도리어 한 방 먹은 셈이 되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일관된 입장은 '''쿠바에서는 고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인데, [[https://web.archive.org/web/20090331143515/http://www.cubanet.org/CNews/y03/nov03/10e8.htm|쿠바에서 고문당한 여성의 사례를 기록한 인권변호사의 기고]]가 있는가 하면 [[https://www.theguardian.com/theguardian/2005/mar/26/guardianletters2|노벨상 수상자들이 쿠바에는 고문이 없다며 피델의 입장에 동조하는 성명문]]을 내기도 했다. 정권에 아부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유의미한 수준의 호의적인 발언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미국을 위시한 반쿠바 진영이 주장하는 쿠바의 인권 실태는 다소 부풀려졌다고 추측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라 카바냐 형무소는 지금도 쿠바에서 제일 유명한 형무소로 공포의 상징이다. 라 카바냐 형무소는 애초부터 식민지 시대부터 사용되던 해안 요새를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한 것이다. 독립 혁명 이후에도 군사기지로 쓰였으며,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쓰였다. 위치상으로도 어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올드 하바나의 내해 바로 건너편에 있다. 현재는 형무소나 군부대로 쓰이고 있지 않으며, 박물관이자 사적지로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형무소에서의 처형이 정식 재판을 통해 진행된 게 아니라 인민재판을 통하여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인민재판이라는 것은 법적인 절차나 법리에 따르지 않고 재판에 참여한 좌중들이 죽이라고 하면 그대로 사형을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수감인 중에서는 중죄인만 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서 수감된 자나, 아주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아무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투옥된 사람도 적잖게 있었다. 인민재판을 거치면서, 좌중들의 군중심리에 이끌려 죄가 없음에도 사형수로 몰려 처형되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다. 특히 정치범 처형은 체의 경력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데, 이들 정치범들이 주로 카스트로와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투옥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피델은 혁명 초기 재판과정에서 나타난 군중심리 요소에 대해서 반박하는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재판은 미국 우익들의 선전과 같이 마구잡이식 학살이 아니라 체계적인 기소에 따라 바티스타 정권에 기생하던 흉악 정치범들을 상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단순히 견해가 다른 정치범을 처형한 것이 아닌 바티스타 집권 기간 중 횡포를 일삼거나 백색테러를 저지른 혐의가 확인된 이들을 처형시킨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